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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택: 본질은 잔재에 있다

 

유진상(계원예술대학교)

 

장승택은 지난 30여 년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회화를 일관되게 하나의 논제로 이끌어왔다. 그것은 사각형의 평면이 허용하는 예외적이고 독자적인 물성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유화와 캔버스를 벗어나 플렉시글라스와 산업적 도료를 사용한 것은 그가 선택한 급진적이고 명확한 방향성과 태도를 보여준다. 이 새로운 소재들로 인해 그의 평면작업은 쉽게 분류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섰으며, 더욱 더 미니멀하고 즉각적인 면(面)으로 작품의 물성을 수렴시킴으로써 회화적 대상의 존재감을 심화하였다. 그의 작품은 평면의 완벽함을 보여준다. 그것은 기술적인 무결성 뿐 아니라 개념적 완결성까지 충족시킨다. 하나의 작품은 철저하게 독자적인 세계의 단면이며 분절된 해석이다. 작품을 보는 즉시 깨닫게 되는 것은 그것이 철저하게 특정한 사유의 형식과 일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적 특수성이 이 작품의 본질적 구조를 이루는데 그것은 아주 미세하거나 비례적으로 희소하게 드러날 뿐이다. 최근의 연작 [Layered Painting]에서 회화성을 드러내는 것은 아주 적은 영역, 예컨대 가장자리에서 미세하게 겹쳐져 있는 물감들의 잔존물이다. 이것의 의도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회화적 물성이 얼마나 최소화된 영역에서 폭발적인 감정과 이어지는 지는 그것을 응시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1965년에 도날드 저드는 그의 역사적 비평문인 ‘특정한 오브제’(Specfic Object)에서 페인팅을 3차원 공간 속에 사각형과 평면으로 자리잡고 있는 입체적 사물로 규정하였다. 그는 페인팅은 그 안에 재현된 세계와의 유사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커다랗고 불특정한 세계의 일부로서 분절된 독자적인 대상이며 ‘총체성으로서의 사물, 그것의 총체적 특질(The thing as a whole, its quality as a whole)’이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점이라고 강조하였다. 각각의 회화적 작품세계가 흥미로운 이유 역시 그것들이 속해있는 커다랗고 불특정한 ‘세계’의 성상과 비범함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으로 인해 저드는 로스코, 뉴먼, 놀랜드, 스텔라의 세계를 자신과 같은 조각가의 세계와 동일선상에서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회화를 완전히 새로운 지평에서 바라보게 했는데, 예컨대 유화와 캔버스의 지위를 산업적 도료와 패널들로 대치시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제공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평면의 물성이 시선의 중심이 놓이게 된 것이다.

물론 저드의 논의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다른 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세계’를 드러내는 개별적 언어에 대한 것이다. 평면적 사물로서의 회화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이 어떤 세계의 단면인지, 어떤 방식으로 그 세계로부터 분절되는 것인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 로스코의 회화는 단지 사각형으로 둘러싸인 공간 정중앙의 뭉게구름 같은 색채의 덩어리일 뿐 아니라, ‘그것’의 특질로 무한히 연장가능한 우주의 단면 혹은 분절된 일부이다. 그 세계 안에서 삶과 죽음, 주체와 객체는 모두 동일한 특질로 수렴되며 우리는 그러한 수렴을 ‘추상’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간결하고 즉각적인 언어로 세계를 압축하는 것, 일종의 ‘제유적(metonymic)’ 언어를 발명하는 것이다.

장승택의 작품 속에서 이러한 압축을 함축하는 몇 가지 특질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중첩’이다. 그의 작품은 맑고 반투명한 면들의 중첩(重疊), 혹은 적층(積層)으로 이루어져 있다. [Layered Painting]에서 상이한 색채의 붓질들로 이루어진 중첩은 필연적으로 검은 면을 만들어낸다. 이 깊고 어두운 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도 없이 반복한 붓질들의 흔적은 가장자리에 남아있다. 즉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비물질적 면의 가장자리에서 매우 미세하게 그것의 물리적 구조가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는 회화적 잉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바로 장승택의 작품이 보여주는 회화적 수사(rhetoric)인데, 그것은 ‘회화적 본질이 그것의 잔재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회화의 전면을 뒤덮고 있는 어두움의 본질은 그것의 가장자리에서 언뜻 보이는, 층위의 찌꺼기들이다. 대상의 본질은 그것이 부지불식간에 남겨놓은, 의식하지 못한, 응시의 범위에서 벗어난, 가장자리로 밀려난, 희소하고 희미한, 부수적인 잔존물이다. 문장으로 번역한 이 시각적 수사는 작품을 구동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세 번째는 앞서 인용한 ‘특정한 사물’로서의 캔버스가 지니는 완결된 물성이다. 특별한 대상으로서의 캔버스는 회화의 핵심적 논제이며 그것의 존재방식은 지구의 중력만큼이나 보편성을 띤다. 때문에 논의의 핵심은 그것이 왜 회화의 기본구조를 이루는가가 아니라 이 사각형의 평면이 우리의 존재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질문은 우리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장승택은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 회화로서의 대상을 철저하게 독자적이고 완결된 사물로 제시한다. 그것을 응시하는 것은 그것의 표면 뿐 아니라 특정한 실존적 특질을 발산하는 존재를 바라보는 것이다.

[Layered Painting] 연작은 장승택의 오랜 화업에서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제, 즉 수없이 내리 그은 약 20~30% 정도의 불투명도를 지닌 아크릴릭 물감과 붓질의 중첩으로 인해 심연처럼 깊어진 검은색 면은 그 자체가 생동하는 우주의 등가물처럼 보인다.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적 순간의 중첩으로 이루어진다. 무한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우주 전체를 하나의 영화로 비유한다면, 각각의 현재는 무한히 긴 필름 롤의 각각의 장면에 해당한다. 전체집합(Universe)은 무한히 분절하는 우주의 현재 순간들(universes)의 무한한 중첩이다.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르면 물리학적 현실에서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은 인간과 같이 열역학의 비-가역적 원칙에 지배되는 존재들에게만 인식되는 현상이다. 시간에 대한 인식과 기억, 직관은 중첩의 형태를 띤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특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시간에 대한 지각은 지나간 것과 다가오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광대한 경계를 이루는 현재성의 형식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것을 파악하는 것은 막막하고도 덧없는 일이다. 장승택은 여러 개의 평붓을 일자로 이어서 그것으로 미디엄과 혼합한 아크릴 물감을 단번에 내리 그어 하나의 반투명 막을 만든다. 그리고 다시 다른 색으로 동일한 행위를 반복한다. 각각의 내리 긋는 붓질은 개별적 현재의 등가물이다. [Layered Painting]에서 작가의 회화적 행위는 인간이 지각하는 세계와 시간의 존재 형식에 대한 대응의 형식인 것이다.

장승택의 작업은 작품의 내적 완결성과 형식적 독창성, 그리고 그것이 위치하는 동시대 회화의 맥락 안에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평가되지 않았다. 그의 작품세계는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의 주류 회화의 연속성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산업적 매체를 통한 회화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의 방법론을 드러내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 있어 레이어의 중첩 혹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투명하거나 반영적인 화면의 구축은 회화의 구조적 특질에 대한 논쟁적 이슈들을 소환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자기완결적인 동시에 회화 이론 전반을 관통하는 내적 요소들을 소환하는 관계론적 작품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탈-비례적(disproportional) 수사를 통해 세계에 대한 지표, 상징 혹은 기호처럼 작동하는 새로운 유형의 시각적 서사를 창조해낸다. 장승택의 작업이 한국 동시대회화에 있어 전적으로 중요한 모멘텀을 이룬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것을 결국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