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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의 공간에 포획된 비물질적 세계

 

심소미/ 큐레이터

 

  겨울의 시린 공기로부터 얼어붙은 호수의 수면을 연상시키는 장승택의 작업은 그 화면의 군데군데 작은 구멍들이 시선을 매혹시킨다. 작가가 ‘폴리드로잉’이라 개념화한 근작들은 반투명한 폴리에스테르 필름을 하나씩 쌓아 알루미늄 패널로 밀봉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반투명한 물성과 프레임의 구조를 통해 빛과 어둠이라는 비물질적 속성을 프레임 안에 가둔 것이다. 녹아내린 빙판 사이로 드러난 심해의 어둠을 좇듯, 그곳엔 함몰된 구멍들이 있다. 어슴푸레한 화면에 드러난 미지의 공간 속으로 포획된 시선은 구멍을 좇아, 밖으로 나갈 줄을 모른다. 한 켜 한 켜, 중첩된 면들을 따라 수렴된 시선은 어느새 켜 너머의 공간을 향한다.

  화면의 2차원적 구조에 한정된 물리적 영역은 불투명한 켜의 공간으로부터 물리적 한계를 거스른다. 또한 함몰된 구멍을 향해 매혹된 시선은 현실의 시간성을 잃어버리고, 과거의 자취를 따라 시간을 역류한다. 이러한 시각과정은 평면적 구조에서 부재하는 장면으로, 그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시각구조로서 가시화한다. 절제된 감성과 이성의 뒷면에서 억압된 근원적 장면은 한없이 뒤로 뒷걸음치나, 이를 포획하는 구조가 그곳에 있다. 이 심연한 영역은 켜들로 표면화됨으로써 마침내 의식의 세계로 드러난다. 근원을 거슬러 표면으로 올라가는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어둠은 스스로를 빛으로 발하며 켜와 켜를 거쳐 반투명한 화면으로 다시 통합된다. 이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보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표면화한다. 겹겹이 쌓인 켜들을 관통하는 시선은 시간을 거스른다. 그리고 공간을 건너간다. 켜와 켜를 따라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는, 그 적층의 연속성은 물질과 정신의 영역을 모두 관통하여 흐른다. 그리하여 도달한 곳은 개개인의 내면 깊숙이 잠긴 작은 심연이자 이 세계의 심연들이다.

 

2011 갤러리 스케이프. 장승택,이교준 2인전 'Captive space' 전시 서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