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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충돌, 불안한 듯한 접속

 

김용대 / 호암미술관 큐레이터

 

 장승택의 작업은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듯이 보인다 이때의 이야기는 보통의 관념적인 시각으로 볼때 인상되어지는 면을 고려한 것이며. 장승택 작업의 경우 우리는 대개 추상적 이라는 말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장승택의 작업이 가지는 색다른 의미는 많은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이야기는 다만 구제적인 형식이나 형태를 지니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장승택의 작업은 매우 상징적인 요소를 화면에 도입하고 있으며, 이때 동원되는 여러 가지 형식적인 방법론은 그것의 형식적인 면과 더불어 내용적인 측면을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형식적인 것이란 매재라는 물체와 관계되는 것으로서 "발견한다"는 과정을 전제로 할 수 있으며. 그 발견은 어떤 여과의 틈을 지나게 되며 이 지남의 형식을 통하여 장승택의 무의식을 건드리게 되어. 이 인식은 그 물체적 특징을 인지함과 더불어 "선택적"이라는 매우 개성적인 결과 를 만들어 내게된다 나아가 이 선택된 재료물은 장승택의 인식속에 흐르는 주된 기류로서의 경험과 의지에 우해서 전혀 새로운 형식과 방법들을 제시하게 된다. 바로 이 시점이 장승택의 critical point가 되는 것으로. 이것은 인간의 무의식이라는 무형적, 추상적 견인자가 하나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하며. 단순한 무형의 물체를 인간의 의식과 의지가 생기를 불어넣는 행위로 볼 수 있으며. 이 과정은 바로 창조적 행위라 불리워질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아무 표정없이 고정되어 있는 물체에게 살아있는 제 2의 형식으로 바꾸는 행위인 것이며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의 본원적 만남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 두가지 움직임의 공통된 근원에 대하여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에는 시간이라는 절대자를 개입시키게 되는데.불과 열이라는 절대가치의 원소를 사용하여 그 간극을 단숨에 넘어버리려 하고 있다. 장승택이 발견해 낸 밀납이나 수지. 파라핀등은 이러한 과정중에서 "필연적"이라는 만남을 만들어 냈으며 최근의 작업에 등장하는 투명색채인 플랙시글라스(작가 본인이 만듬)위에 오일페인팅을(손바닥으로 일정 하게 밑의 아크릴 색채가 드러날 정도의 두께로 그린)한 작업은 특히 색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작업이며, 이러한 과정 중에 신체라는 매우 건강한 행위가 더하여 지곤 한다 .

 이것은 이전에 보여 주었던 드로잉개념의 커팅작업이 새로운 면모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때 사용되는 플랙시글라스라는 독특한 매체는 투명성과 물질성을 서로 극대화 시킨 작업으로. 두개의 상반되는 입장을 팽팽한 긴장으로 유도시키는 대비적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 점이 바로 장승택의 창조적 행위에 은밀함을 더하게 하며 "신체 에너지의 변화"를 활용하여 지지체와 물감이 하나가 되게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상대적이 라는 단순비교에서 재료와 경험과 무의식이 한점에서 대비되면서 하나의 근원을 찾아가는 행위가 되고 있다 이것은 양이라고 이름지워진 물체의 외표에서 그것의 "울림"이라고 볼 수 있는 음의 근원에 대해서 축척하고 있는 행위인 것이고. 관념과 경험 그리고 사유가 지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증명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장승택의 "이야기가 없는"작업 결과는 이러한 과정을 찾아가는 역으로의 행위인 것이며 매우 논리적인 배경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승택의 시각이나 의식의 변화는 단순한 의도적 변화가 아닌 생활자체가 변화하는 총체적인 사건이며 그것은 바로 삶의 근거로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장승택의 최근 환경의 변화가 주요한 변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그러한 환경을 찾아나서는 적극적인 의지로서의 변화임을 지적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장승택의 최근생활은 매우 긍정적이며 깊이있는 형식을 지니고 있다.

 자연을 보는 눈이 매우 폭넓어지고 다양해지고 있으며. 부드러운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그것의 외표되는 결과는 매우 조용하고 예민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그 내부의 상태는 격렬한 신음과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것이다. 무엇에 대한 강한 호기심은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인 행위의 표현으로 집약되어 페인팅적인 형식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두려움이라는 부정적인 면은 단순한 부정이 아닌 적극을 향한 하나의 밑거름이 되고 있으니 장승택의 작업에서 그 두려움은 매우 중요한 모티브이자 베이직이 되고 있다.

  이러한 관계항 속에서 빛이라는 절대자의 힘을 인지하고 있으면서 그안에서 인간의 의지적 발현인 "침묵"이라는 어법을 배워나가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속에서 두려움이라는 밑바탕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바로 그 위에 장승택의 호기심이라는 용기는 본능적이면서도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페인팅으로 작용되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행위가 장승택 작업의 출발이 되고 있으며 90년대 초기에 보여 주었던 구조적인 작업은 최근의 작업에서 깊이있는 대비적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 이때의 대비는 상충되는 듯한 두가지의 관념이 하나로 조우하는 것이며, 이때의 충돌이 미묘한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이 "미묘한 충돌, 불안한 듯한 접속"등이 최근의 작업이 가지는 의미이며 이 불안한 듯한 접속이야말로 화면상에서 예민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점은 소위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적 과제와도 연결지을 수 있는 것으로 있음과 더불어 있음(두려움)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를 넘어서 살아있음을 철저하게 설명함으로서 현재 존재하는 것을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과 구별하는 행위이며 이러한 점이 바로 장승택 작업의 가능성인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가능성을 매우 기초적인 것에서 출발하여 장승택이 묻고 있는 현상의 근원성을 다른 매체를 통하여 찾아냄으로써 "하나의 단순한 근거를 통하여 원초에 대한 근거를 입증"하려 는 태도로 지적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서 표현되는 하나의 주제와 하나의 객체가 바로 "간극"이라는 존재가능성이다. 이러한 두가지의 속성은 결과적으로 결합함으로써 파악되고, 밝혀짐을 전제로 할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승택이 추구하는 두려움과 호기심의 대비적 관계는 밝혀져있는 절대적인 빛과 자기존재의 본성, 자신을 화합시킨다는 것으로는 거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입장을 이해하려는 방식이라고 해석될 수 있으며. 이 이해되지 않는 "간극"이 바로 장승택의 과제이다.

 이 과정 중에 등장하는 조형상의 몇가지 특징은 주목할 만 한데 그것은 미묘한 뉘앙스의 색감과 단층처럼 결이 지어진 화면상의 표식이다. 이때 나타난 표면의 색감은 보통의 유화 물감이 적절히 혼합된 것이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지층처럼 만들어진 캔버스 속에서 배어나오는 기본 색감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페인팅된 색이며, 이 색 또한 기존의 붓질이나 나이프질이 아닌 몸과 손이라는 신체성을 활용한 것이며 이 때의 신체성은 인간의 호흡이라고 할 수 있는 장승택의 몸짓이 가해진 매우 밀착된 그리고 예민한 페인팅인 것이다. 이경우가 painting을 위한 painting이 아닌 바로 인간의 호흡과 시각이 하나로 만나는 시간이며 이시간의 진행과정이 바로 장승택의 색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즉 행위속에 존재 하는 장승택의 사유가 비로서 색이라 불리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이 색은 한 인간의 호흡과 몸이라는 신체가 동원되었으며 인간의 사유가 자연의 외광을 받아 개인적인 생각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익명적 입자로 변형되어지는 형식임 을 지적할 수 있으며, 우리가 보고 느끼는 색들은 입자로 이루어진 어떤 형식이되 인간의 내면이 일정한 표식으로 나타나는 행위임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2008 박여숙화랑 전시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