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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환영

 

장승택

 

반 고호의 빛이 한 여름 정오의 빛이라면 나의 빛은 대지와 맞닿은 새벽녘 하늘빛이며, 일식 때의 태양 언저리의 빛이며, 성숙하지 않은 소녀의 길지 않은 가운데 손톱의 투명한 빛이다. 빛과 색채는 회화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이지만 나의 작업에 있어서 그것들은 반투명한 매체와 함께 절대적 요소가 된다. 증식된 투명한 색채와 빛의 순환에 의한 물성의 구체화를 통한 정신의 드러냄이 내 작업의 진정한 의미라 하겠다.

우리는 색채가 물질적인 요소가 아니라 물질을 부여하는, 즉 육체를 부여하는 물체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색채는 빛에 의해서 생성되며 사물의 표면 위에서 본체를 갖는다.

나의 신작 “겹 회화(Layered Painting)"시리즈는 기존의 ”Poly Painting"시리즈의 연장선 안에 있는 개념의 작업으로 색채의 단층들이 만들어 내는 색면 회화이다.

나는 30여 년간 붓을 떠난 회화를 해왔다. 정말 오랜만에 붓을 다시 들었다. 회화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도구인 붓은 작가의 작은 손 움직임만으로도 너무 많은 궤적을 남긴다. 그래서 최소한으로 몸을 움직였다. 큰 일획... “겹 회화(Layered Painting)" 작업은 특별히 제작된 대형 붓으로 아크릴물감과 특수미디엄을 섞은 안료를 수십 회 매번 다른 색으로 투명하게 채색하고 건조를 반복하여 완성한다.

흰 여백, 색, 농도, 색면 폭의 감각적 선택, 무수히 반복되는 단순한 몸짓 후에 드러나는 거대한 색채의 환영. .

어둠이 내리면 색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

2019. 10. 8 장 승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