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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정체와 움직임을 포착하기

 

Eric Suchere / 미술평론가

 

 장승택의 회화가 항상 단색만 보여주기는 해도 그는 결코 모노크롬의 작가는 아니다. 게다가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에는 붓이 닿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합성수지에 색채를 고정시킨다. 아니, 합성수지에 의해서 색채를 응고시킨다. 그의 색채는 결코 화면(support)위에 얹혀진 피막이 아니라 관람객들 앞에 부동화된 하나의 색채 덩어리인 것이다.
 

색채의 환영

 우리는 색채가 물질적인(materiel) 요소가 아니라 물질(matiere)을 부여하는, 즉 육체를 부여하는 물체(corps)에 의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색채는 빛에 의해서 생셩되며 사물의 표면 위에서 본체를 갖는다.

 장승택의 회화 작품에서 - 더 나은 표현이 없는 한 회화라고 부르기를 계속하자 - 빛과 색채는 그 자체가 완전한 주체(corpps)가 된다. 왜냐하면 수지라는 투명한 요소가 빛과 색채에 의해서만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충격적이고도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형체가 없는 두가지 요소가 서로 뒤섞임으로써 이처럼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색채가 여전히 파악되지 않은 채 명실공의한 색채라기 보다는 색채의 환영으로 남는다는 점이다.
 

응고된 시간

 따라서 이는 모노크롬의 문제가 아니라 빛과 색채를 드러내는 형체(corps)의 문제이다. 그가 단색으로만 작업하는 것은 오직 작품상의 기술적인 조건일 뿐 동기나 목적은 아닌 것이다. 장승택은 결코 Robert Mongold, Brice Marden, Alan Charlton등의 여러 작가들이 했던 것 같은 회화를 색채로 국한시키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있어서는 명백함에 의해 부동성과 순환의 요소를 만들어 내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의 작품에 있어서 색채는 응고되지만 빛은 마티에르에 의해 단순히 반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색채를 통과한다. 빛은 작품 뒤의 벽면에 부딪힌 후 역으로 마티에르를 다시 관통해 나온다. 따라서 빛의 이중순환으로 인해 빛이 외부로부터가 아닌 오브제 자체에서 나오는 느낌을 준다. 바로 이것이 그의 작품에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요소이다. 즉 오브제 스스로가 자체의 빛을 내보내며 발광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빛의 유동성에 상응하는 것이 색채의 부동성이다. 색채는 마치 화석처럼 여겨지는 틀과 덩어리 안에 언제까지나 영원히 결빙되고 응고된 것처럼 느껴진다.

 회화작품들은 이처럼 화석화되고 정지된 시간과 유동적이고 불완전한 시간 사이에서의 시간의 얼굴들인 것이다. 나는 장승택의 작품 한 점을 곁에 두고 생활하면서 작품은 그것의 순수한 색채, 반짝임, 율동 그리고 빛의 역동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변경수정되고 하나의 비밀스러운 정체성의 그 무엇을 간직하면서 늘 그것 자체인 것같다는 야릇한 현상을 깨달았다.


휴대용 소 우주개벽

 그러나 장승택의 작업이 단순히 현상적이지만은 않다. 이점에서 그의 회화는 James Turrel이나 Ettore Spallerri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Turrel의 회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색채를 견고한 오브제처럼 인지하게 하며 이 오브제를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공간에 잠기게 하여 보는 이를 자신의 인지능력을 뛰어넘는 물리적 현상에 대한 관찰자로 변화시킨다.

 이태리 작가인 Spalletti의 작품에서 색채는 데생과 윤곽 없는 오브제가 되어 자신을 가두어버릴지도 모를 형태(forme)를 끊임없이 초월한다. 시적인, 대단히 시적인 이 같은 요소들 외에는 아무것도 이 작업을 살리지 못한다. 장승택의 작품에서 색채나 빛 뿐만 아니라 세상의 마티에르를 만날 수 있다. 그가 불로 작업을 하든, 수지 안에 물을 가두든, 작품의 표면이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얼음이나 어떤 기체를 상기시키는) 그 곳에 감금된 것은 바로 세계의 물질 그 자체인 것이다.

 장승택은 결코 작품의 인지와 현실세계의 인지를 분리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을 작품, 다시 말해, 조형물(artefact)로 변화시킨다. 조형물! 그것은 우리가 잘 알듯이 세계를 모방하는 가상오브제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하나의 예술의 결과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작업을 비극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인데 왜냐햐면 그의 작업이 있을 법하지 않은 오브제 안에 세상의 한 순간을 응고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결코 평온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억제되고, 또다시 스스로 사슬을 푸는 세상의 술렁거림이고 또 다른 현대적 의미의 "판도라의 상자"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1995